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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2011/02/09 22:19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씨가 11월 1일날 쓰러지고, 5일날 죽었을때도 그랬다. 화가 났다. 그리고 슬펐다. 자기 노래처럼 가 버린 인생이 너무 어이없게 드라마틱해서. 차디찬 지하 셋방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서른 여덟먹은 남자의 모습이 계속 눈 앞에 떠올랐다. 1월 27일, 홍대 역사상 가장 많은 밴드와 클럽이 참여한 추모 공연에서 디어 클라우드가 '요정은 간다'를 불렀을때, 눈물이 찔끔 났다. 갑갑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 며칠간 굶은 끝에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무언가 꿍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서른 두살의 시나리오 작가는 며칠동안 굶다 이웃에게 밥과 김치를 달라는 소심한 종이 쪽지만 남겨두고 죽었다. 전기도 끊긴 차가운 셋방에서 깡말라 죽은 서른 두살 여자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올라 하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역시, 무언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토해지지 않아 갑갑하고 슬펐다.

화요일에 한겨레에 기사가 나간 후, 많은 언론이 이를 다시 보도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가슴아파했다. 우리 엄마는 머리하면서 미용실 원장님과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고 내가 가는 게시판마다 이 암담한 사건을 입에 올렸다. 그렇다. 다들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제 굶어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대한민국에서, 젊은 여자가 홀로 굶어죽고마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에. 몇몇 사람들은 나처럼 그녀의 죽음과 이진원씨의 죽음을 함께 떠올렸다. 자신의 재능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꿈이 무참하게 꺾여버렸단 사실에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영화판, 음악판, 만화판 등 재능으로, 창작물로 먹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죽음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보았다. 나의 마지막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예감.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회사원이 되기를 포기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겐 지금의 대한민국은 공포 그 자체다.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원래 좀 가난하게 살고 좀 궁상맞게 사는건 아주 오래전부터 으레 그런걸로 알고 있던 얘기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제 이것을 위해서는 품위유지는 고사하고 생존을 담보로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국민소득은 2만달러라면서 왜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삶은 시궁창 수준으로 처박힌 것일까. 도대체 왜.

사실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재능은 바로 돈이 되지 않는다. 연마되고 발휘되고, 선택되고 상품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인풋과 아웃풋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시작하려는 사람도, 갑의 입장에서는 발에 채일만큼 많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하고 살겠다는 너무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을 저당잡힌채 희박한 미래에 희망을 걸고 줄을 선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문화산업은 이른바 '팔길이 정책'에 의해 지원받았다. 말그대로 팔의 길이만큼 거리를 두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자가 문화 산업의 모토였던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영화계 및 각 문화계가 엄숙하게 그의 죽음을 기린 것은 이런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문화 산업의 모토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대신에 한예종의 이론 교육과정을 없애려 하고 총장이었던 황지우 시인을 압박해 사퇴하게 한 것은 알겠다. 유인촌 장관 하에서 문화계 전역에서 숱한 마찰이 있었단 사실은 알겠다. 최고은 작가 같은 수많은 '을'들을 굶어죽지 않게 할 어떤 안전망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지금 대한민국이 너무나 슬픈건,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현실 속에서 수천 수만의 '최고은'이 삶의 무게에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잉여, 아웃사이더, 히키코모리와 같은 단어들이 상징하듯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홀로 자신의 삶을 견뎌내야 한다. 부모세대가 가지고 있던 '동네 네트워크'는 더 싼 지역으로 부평초처럼 옮겨 다녀야 하는 자취생들에게는 가져보지도 못한 자산이다. 최고은씨가 도움을 요청한 이웃집 아저씨가 그녀가 닿을 수 있는 '동네 네트워크'의 한계였을 것이다. 사회도 가난한 젊은이들을 무력하게 방치하고 이들은 오롯이 혼자 살아가다 혼자 고통받고 혼자 죽는다. 

정책 결정자는 아이폰과 닌텐도 같은 제품들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치며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것을 보며 너무나 쉽게, 그런거 한번 만들어보라 한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로 영국이란 나라의 이미지까지 바꾸며 그야말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일을 하는 걸보고, 우리도 이런거 한번 해보자 한다. 그런데 조앤 롤링이 미혼모의 몸으로 카페에서 해리포터를 집필할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 지급됐던 보조금 덕분인건 아는가. 아이폰과 닌텐도가 it 제품이라서 공장에서 찍어내면 바로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이있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서사가 베이스가 돼 있기 때문에 제품이상의 문화 현상이 된 것은 아는가. 그리고 그걸 창조해내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어떤 대접을 해 주는지, 과연 알고 있는가. 이걸 모른다면 당신들이 바라는 국격이고 국가브랜드고 올릴 길은 참으로 요원하다는거 진짜 알고 있는가.


 

Posted by 찌꾸